AI시대 새로운 문해력이 옵니다.
AI시대 새로운 문해력이 옵니다.
들어가는 말



여러분, 반갑습니다.
혹시 오늘 자녀의 문해력 점수를 받아보셨나요? 혹은 "우리 아이, 글을 읽어도 이해를 못 해요"라는 선생님 말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셨던 적 있으신가요? 아니면 "요즘 애들은 문해력이 떨어진대요"라는 뉴스를 보며 불안해지셨나요?
저는 압니다. 그 마음을요. 저 역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고, 20년간 현장에서 수천 명의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만나온 사람이니까요.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부모님들의 표정을, 자녀 교육 앞에서 느끼는 그 막막함을, 저는 너무나 잘 압니다.
사교육 시장이 만들어낸 불안
"문해력 무료 측정해드립니다."
요즘 이런 광고 많이 보셨죠? 저는 고백하자면, 그 사교육 시장 안에서 교육상품을 팔아본 사람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 아이를 위해 그 상품을 사본 학부모이기도 합니다. 안팎을 모두 경험했기에 감히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측정 결과가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반드시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어머님, 지금 당장 시작하셔야 해요." "이거 안 하면 나중에 큰일 납니다." 상담을 받다 보면 죄책감이 밀려옵니다. '내가 지금까지 뭐 했나... 책도 제대로 안 읽혔는데...'
저는 20년간 아동 상담 전문가로 일해왔습니다. 발달심리, 교육학을 공부하고 현장에서 수많은 사례를 다뤄온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교육 시장 상담을 받으면 어떨까요? 똑같습니다. 저도 자괴감이 듭니다. 그만큼 그들의 시스템은 정교하고, 우리 부모의 마음을 정확히 건드립니다. 등록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제 했으니까 괜찮겠지...' 하지만 여러분, 이게 정말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것일까요?
왜 경기가 어려울수록 사교육비는 늘어날까요?
2024년 사교육비가 약 29조 2,00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대비 7.7% 증가, 4년 연속 최대치입니다. 경기는 어려운데 사교육비는 왜 늘어날까요? 행동경제학에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을 2배 이상 크게 느낀다는 이론입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더 높이'를 위한 경쟁이지만, 경기가 어려울 때는 '떨어지지 않기 위한' 생존 경쟁이 됩니다.
학부모님들 마음이 이렇지 않으신가요? "다른 건 몰라도 자식 교육만큼은..." 맞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사교육은 유일한 보험처럼 느껴집니다. '남들 다 하니까'가 아니라 '안 하면 우리 아이만 뒤처진다'는 절박함입니다. 이건 의지나 다짐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느끼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이 거대한 '지성의 시스템' 앞에서 우리는 생각을 멈춥니다. 점수와 등급, 척도가 만들어낸 불안 앞에서 우리의 사유는 정지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씁니다. 학부모님들이 진짜 문해력이 무엇인지, 우리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한 마을에서 발견한 진실
제가 한 마을에서 10년을 일했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지역사회 개발을 맡았죠. 2011년 첫 조사에서 충격적인 수치를 봤습니다. 청소년 음주 흡연률이 보건복지부 평균의 3배였습니다. 학부모님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동네가 이렇게 심각했어요?" 절망과 자책이 교차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마을 전체가 움직였습니다. 다양한 사업과 캠페인을 진행했고, 5년 후 재조사에서 그 수치는 5배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성공이었을까요? 숫자만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진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왜 떨어졌을까? 어떤 사업이 효과가 있었을까?
그래서 질적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녹취하고, 그 언어들을 분석했습니다. 하루 종일 타이핑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분류하고 범주화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며 찾아낸 단 하나의 진실.
그것은 '관찰자의 눈'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술 담배를 살 수 있는 곳곳에, 그러길 바라지 않는 '눈'이 생긴 겁니다. 동네 슈퍼 아저씨, 편의점 알바생, 공원 벤치의 어르신들... 그 눈들이 아이들을 지켜봤고, 서로를 이어줬습니다. 촘촘한 관계의 그물망이 만들어진 것이죠. 어느 아이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담배 사러 옆 동네까지 가요. 우리 동네에선 못 사겠어요."
척도 점수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진실이었습니다. 만약 숫자에만 만족했다면, 저는 진짜 이유를 영영 모른 채 끝났을 겁니다.
여러분 자녀의 성적이 20점 올랐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는 뭐라고 결론 내릴까요? "학원을 바꿔서 그런가?" "과외가 효과가 있나봐."
반대로 떨어졌다면? "게임을 너무 해서..." "요즘 친구 관계가 안 좋아서..."
정말 그게 전부일까요?
저는 수능을 2번 봤습니다. 두 번 모두 영어 만점을 받았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학원? 문제집? 아닙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난 학원 선생님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거의 사랑에 빠졌었죠. 그분이 좋아서 학원에 가고 싶었고, 그분께 칭찬받고 싶어서 공부했습니다. 점수나 실력이 아니라, 관계였습니다. 그런 관계로 인한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EBS로 영어회화를 듣습니다. 이건 이성의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점수, 등급, 석차... 하지만 그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90%가 존재합니다. DNA의 부호화 정보가 전체의 몇 퍼센트에 불과한 것처럼, 우리가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90%를 읽어내는 힘, 그것이 진짜 문해력입니다.
문해력, 다시 정의하기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문해력은 '읽고 쓰는 능력'이었습니다.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능력, 요약하고 분석하는 능력...
하지만 제가 20년간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을 통해 깨달은 것은 다릅니다. 문해력은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해체하는 능력입니다. 말 장난이 아닙니다. 언어가 없었던 태초로 돌아가 사유하는 것입니다. "문해력 60점입니다"라는 말 속에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는 힘, "이거 안 하면 큰일 나요"라는 협박 속 불안 마케팅을 꿰뚫어보는 힘, 점수 이면의 아이 마음을 읽어내는 힘. 그것이 진짜 문해력입니다.
김춘수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꽃이 나를 불러주기 전에 나는 한 낱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립니다. 점수가 아닌 존재로, 등급이 아닌 한 사람으로 불려지길. 그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부모의 문해력이고,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읽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이의 문해력입니다.
술래가 사라진 시대, 우리 아이들

여러분, 술래잡기 해보신 적 있으시죠? 그런데 만약 술래가 찾기 귀찮다며 집으로 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숨어 있는 아이들은 영원히 발견되지 못합니다. 술래잡기는 이상한 게임입니다. 술래가 찾아주지 않으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숨은 사람이 아무리 잘 숨어도, 술래가 찾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술래는 반드시 '찾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제가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 모든 술래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씁쓸한 현실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찾는 일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왜일까요?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이 왔기 때문입니다. 궁금하면? 검색하면 됩니다. 모르면? AI에게 물으면 됩니다. 찾지 않아도, 고민하지 않아도, 밤잠을 설치지 않아도 모든 답이 화면에 떠오릅니다.
학부모님께 여쭙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마지막으로 뭔가를 열심히 찾아본 게 언제인가요? 궁금한 것이 있어서 책을 뒤적이고,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엄마 아빠,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고 물어본 게 언제였나요? 대신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유튜브 쇼츠를 넘기고, 틱톡을 스크롤하고, 누군가 만든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으로 누군가의 조회수를 올려주고, 시청시간을 채워줍니다. 찾는 사람에서 소비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저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술래가 되지 않으면 노예가 된다." 거칠게 들리시나요? 하지만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중세 봉건시대의 농노는 무엇을 했습니까? 영주가 시키는 대로 일했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했습니다. 질문하지 않았고, 찾지 않았고, 주어진 것만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을 봅니다. 플랫폼이 제시하는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누군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선택하고, 반응하고, 시간을 씁니다. 스스로 찾지 않습니다. 질문하지 않습니다. 의미를 부여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제가 현장에서 목격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이 책을 쓰는 이유입니다. AI 시대, 우리 아이들이 소비자가 아닌 창조자로, 노예가 아닌 술래로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술래가 되는 것, 그것이 진짜 문해력의 시작입니다.
이 책을 통해 드리고 싶은 것
저는 이 책을 통해 여러분께 새로운 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점수 너머를 보는 눈, 시스템의 언어를 해체하는 눈, 우리 아이의 진짜 모습을 읽어내는 눈. 그리고 우리 아이가 스스로 술래가 되어 세상을 탐험하고,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나누고 싶습니다.
서문이 길었습니다만 1장부터 펼쳐질 이야기를 위한 워밍업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우리는 함께 먼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태초 인류의 사유가 싹 튼 곳까지, 지성이 만들어낸 신화를 해체하는 여행입니다.
이 여행이 끝날 때쯤, 여러분은 사교육 시장에서 더 이상 위축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의 문해력 점수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아이의 눈빛을 읽고, 아이의 질문을 듣고, 아이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문해력이고, 부모가 가져야 할 문해력입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여러분, 반갑습니다.
혹시 오늘 자녀의 문해력 점수를 받아보셨나요? 혹은 "우리 아이, 글을 읽어도 이해를 못 해요"라는 선생님 말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셨던 적 있으신가요? 아니면 "요즘 애들은 문해력이 떨어진대요"라는 뉴스를 보며 불안해지셨나요?
저는 압니다. 그 마음을요. 저 역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고, 20년간 현장에서 수천 명의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만나온 사람이니까요.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부모님들의 표정을, 자녀 교육 앞에서 느끼는 그 막막함을, 저는 너무나 잘 압니다.
사교육 시장이 만들어낸 불안
"문해력 무료 측정해드립니다."
요즘 이런 광고 많이 보셨죠? 저는 고백하자면, 그 사교육 시장 안에서 교육상품을 팔아본 사람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 아이를 위해 그 상품을 사본 학부모이기도 합니다. 안팎을 모두 경험했기에 감히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측정 결과가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반드시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어머님, 지금 당장 시작하셔야 해요." "이거 안 하면 나중에 큰일 납니다." 상담을 받다 보면 죄책감이 밀려옵니다. '내가 지금까지 뭐 했나... 책도 제대로 안 읽혔는데...'
저는 20년간 아동 상담 전문가로 일해왔습니다. 발달심리, 교육학을 공부하고 현장에서 수많은 사례를 다뤄온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교육 시장 상담을 받으면 어떨까요? 똑같습니다. 저도 자괴감이 듭니다. 그만큼 그들의 시스템은 정교하고, 우리 부모의 마음을 정확히 건드립니다. 등록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제 했으니까 괜찮겠지...' 하지만 여러분, 이게 정말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것일까요?
왜 경기가 어려울수록 사교육비는 늘어날까요?
2024년 사교육비가 약 29조 2,00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대비 7.7% 증가, 4년 연속 최대치입니다. 경기는 어려운데 사교육비는 왜 늘어날까요? 행동경제학에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을 2배 이상 크게 느낀다는 이론입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더 높이'를 위한 경쟁이지만, 경기가 어려울 때는 '떨어지지 않기 위한' 생존 경쟁이 됩니다.
학부모님들 마음이 이렇지 않으신가요? "다른 건 몰라도 자식 교육만큼은..." 맞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사교육은 유일한 보험처럼 느껴집니다. '남들 다 하니까'가 아니라 '안 하면 우리 아이만 뒤처진다'는 절박함입니다. 이건 의지나 다짐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느끼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이 거대한 '지성의 시스템' 앞에서 우리는 생각을 멈춥니다. 점수와 등급, 척도가 만들어낸 불안 앞에서 우리의 사유는 정지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씁니다. 학부모님들이 진짜 문해력이 무엇인지, 우리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한 마을에서 발견한 진실
제가 한 마을에서 10년을 일했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지역사회 개발을 맡았죠. 2011년 첫 조사에서 충격적인 수치를 봤습니다. 청소년 음주 흡연률이 보건복지부 평균의 3배였습니다. 학부모님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동네가 이렇게 심각했어요?" 절망과 자책이 교차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마을 전체가 움직였습니다. 다양한 사업과 캠페인을 진행했고, 5년 후 재조사에서 그 수치는 5배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성공이었을까요? 숫자만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진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왜 떨어졌을까? 어떤 사업이 효과가 있었을까?
그래서 질적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녹취하고, 그 언어들을 분석했습니다. 하루 종일 타이핑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분류하고 범주화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며 찾아낸 단 하나의 진실.
그것은 '관찰자의 눈'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술 담배를 살 수 있는 곳곳에, 그러길 바라지 않는 '눈'이 생긴 겁니다. 동네 슈퍼 아저씨, 편의점 알바생, 공원 벤치의 어르신들... 그 눈들이 아이들을 지켜봤고, 서로를 이어줬습니다. 촘촘한 관계의 그물망이 만들어진 것이죠. 어느 아이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담배 사러 옆 동네까지 가요. 우리 동네에선 못 사겠어요."
척도 점수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진실이었습니다. 만약 숫자에만 만족했다면, 저는 진짜 이유를 영영 모른 채 끝났을 겁니다.
여러분 자녀의 성적이 20점 올랐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는 뭐라고 결론 내릴까요? "학원을 바꿔서 그런가?" "과외가 효과가 있나봐."
반대로 떨어졌다면? "게임을 너무 해서..." "요즘 친구 관계가 안 좋아서..."
정말 그게 전부일까요?
저는 수능을 2번 봤습니다. 두 번 모두 영어 만점을 받았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학원? 문제집? 아닙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난 학원 선생님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거의 사랑에 빠졌었죠. 그분이 좋아서 학원에 가고 싶었고, 그분께 칭찬받고 싶어서 공부했습니다. 점수나 실력이 아니라, 관계였습니다. 그런 관계로 인한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EBS로 영어회화를 듣습니다. 이건 이성의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점수, 등급, 석차... 하지만 그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90%가 존재합니다. DNA의 부호화 정보가 전체의 몇 퍼센트에 불과한 것처럼, 우리가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90%를 읽어내는 힘, 그것이 진짜 문해력입니다.
문해력, 다시 정의하기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문해력은 '읽고 쓰는 능력'이었습니다.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능력, 요약하고 분석하는 능력...
하지만 제가 20년간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을 통해 깨달은 것은 다릅니다. 문해력은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해체하는 능력입니다. 말 장난이 아닙니다. 언어가 없었던 태초로 돌아가 사유하는 것입니다. "문해력 60점입니다"라는 말 속에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는 힘, "이거 안 하면 큰일 나요"라는 협박 속 불안 마케팅을 꿰뚫어보는 힘, 점수 이면의 아이 마음을 읽어내는 힘. 그것이 진짜 문해력입니다.
김춘수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꽃이 나를 불러주기 전에 나는 한 낱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립니다. 점수가 아닌 존재로, 등급이 아닌 한 사람으로 불려지길. 그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부모의 문해력이고,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읽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이의 문해력입니다.
술래가 사라진 시대, 우리 아이들

여러분, 술래잡기 해보신 적 있으시죠? 그런데 만약 술래가 찾기 귀찮다며 집으로 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숨어 있는 아이들은 영원히 발견되지 못합니다. 술래잡기는 이상한 게임입니다. 술래가 찾아주지 않으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숨은 사람이 아무리 잘 숨어도, 술래가 찾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술래는 반드시 '찾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제가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 모든 술래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씁쓸한 현실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찾는 일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왜일까요?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이 왔기 때문입니다. 궁금하면? 검색하면 됩니다. 모르면? AI에게 물으면 됩니다. 찾지 않아도, 고민하지 않아도, 밤잠을 설치지 않아도 모든 답이 화면에 떠오릅니다.
학부모님께 여쭙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마지막으로 뭔가를 열심히 찾아본 게 언제인가요? 궁금한 것이 있어서 책을 뒤적이고,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엄마 아빠,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고 물어본 게 언제였나요? 대신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유튜브 쇼츠를 넘기고, 틱톡을 스크롤하고, 누군가 만든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으로 누군가의 조회수를 올려주고, 시청시간을 채워줍니다. 찾는 사람에서 소비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저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술래가 되지 않으면 노예가 된다." 거칠게 들리시나요? 하지만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중세 봉건시대의 농노는 무엇을 했습니까? 영주가 시키는 대로 일했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했습니다. 질문하지 않았고, 찾지 않았고, 주어진 것만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을 봅니다. 플랫폼이 제시하는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누군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선택하고, 반응하고, 시간을 씁니다. 스스로 찾지 않습니다. 질문하지 않습니다. 의미를 부여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제가 현장에서 목격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이 책을 쓰는 이유입니다. AI 시대, 우리 아이들이 소비자가 아닌 창조자로, 노예가 아닌 술래로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술래가 되는 것, 그것이 진짜 문해력의 시작입니다.
이 책을 통해 드리고 싶은 것
저는 이 책을 통해 여러분께 새로운 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점수 너머를 보는 눈, 시스템의 언어를 해체하는 눈, 우리 아이의 진짜 모습을 읽어내는 눈. 그리고 우리 아이가 스스로 술래가 되어 세상을 탐험하고,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나누고 싶습니다.
서문이 길었습니다만 1장부터 펼쳐질 이야기를 위한 워밍업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우리는 함께 먼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태초 인류의 사유가 싹 튼 곳까지, 지성이 만들어낸 신화를 해체하는 여행입니다.
이 여행이 끝날 때쯤, 여러분은 사교육 시장에서 더 이상 위축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의 문해력 점수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아이의 눈빛을 읽고, 아이의 질문을 듣고, 아이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문해력이고, 부모가 가져야 할 문해력입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