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스타트업 방법론은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 기능 제품)를 강조합니다. MVP는 '가장 형편없는 제품을 만들라'는 뜻이 아닙니다. '핵심 가설을 검증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 담은 제품을 가장 빠르게 만들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정신과 약물 복용 후기를 모아주는 서비스를 만든다고 가정해 봅시다. 일반적인 창업자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후기 작성 기능, 검색 기능, 좋아요 기능, 카카오 소셜 로그인, 사용자 마이페이지...' 머릿속의 기능 목록이 점점 길어집니다. 하지만 잠깐, 핵심을 물어봐야 합니다. 고객에게 진짜로 중요한 것이 '후기를 쓰는 것'인가요, 아니면 '후기를 보는 것'인가요?
만약 후자라면, 직접 후기 작성 기능을 개발하기 전에 인터넷 곳곳에 흩어진 후기 데이터를 모아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요 검증이 가능합니다. 조회수가 늘어나는지, '좋아요'가 쌓이는지, 사람들이 링크를 공유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MVP의 정신입니다. 지금 생각하는 기능의 90%는 틀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핵심 기능 Top 3만 남기고 모두 덜어내는 것, 그것이 MVP의 시작점입니다.
그리고 MVP를 만들기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ICP(Ideal Customer Profile, 이상적인 고객 프로필)의 정의입니다.
초기 제품은 불특정 다수에게 뿌려서는 절대 안 됩니다. '20대 직장인 여성'이라는 인구통계학적 정의는 너무 넓습니다. 구체적인 행동(Behavior)과 상황(Context)이 함께 있어야 진짜 타깃이 됩니다.
미국의 매트리스 스타트업 캐스퍼(Casper)의 사례는 이 부분에서 자주 인용되는 레퍼런스입니다. 캐스퍼는 초기 타깃을 단순히 '잠을 잘 못 자는 사람들'로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훨씬 더 정밀하게 접근했습니다. '새벽 2시에 허리 통증으로 잠에서 깨어나, 스마트폰으로 허리에 좋은 매트리스를 검색하는 사람'이 그들의 ICP였습니다. 이처럼 구체적인 행동 기반의 타깃을 설정하면, 그 사람이 전환되는 타이밍과 채널을 정확히 잡을 수 있습니다.
1,000명에게 제품을 뿌리고 이탈률을 관찰하는 것보다, 10명의 명확한 ICP를 직접 만나 그중 8명의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 내는 경험이 훨씬 더 가치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초기 성장은 숫자의 게임이 아닙니다. 깊이의 게임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창업가가 MVP를 만들기 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가장 위험한 가설(Riskiest Assumption)'이 무엇인가입니다.
가장 위험한 가설이란, 이 가설이 틀리면 사업 자체를 포기해야만 하는 핵심 전제를 뜻합니다. 레시피 추천 앱을 만든다면, '사람들이 레시피를 보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라는 가설이 가장 위험한 가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화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데 3개월을 쏟아붓는 것은, 땅을 파기 전에 파이프를 사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위험한 가설을 가장 먼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검증하는 것. 그것이 MVP 설계의 진짜 철학입니다.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법론을 세상에 알린 에릭 리스(Eric Ries)는 이 과정을 Build-Measure-Learn(만들고-측정하고-배우는) 사이클로 정리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이클을 한 번이 아니라, 반복해서, 점점 빠르게 돌리는 것입니다. 매 사이클마다 우리는 고객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됩니다. 그 앎이 쌓일수록 제품은 시장에 가까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