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두의 능력을 기르려면 내면을 성찰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묘사 일기 쓰기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경이로움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려 다섯 문장 이상으로 세밀하게 묘사해보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경험의 재구성이자 해석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경험은 언어화될 때 비로소 우리의 것이 되고,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묘사 일기는 순간적으로 스쳐간 경험을 붙잡아 우리 내면에 각인시키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몰두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는 우리의 주의를 끊임없이 분산시킨다. 알림, 메시지, 피드 업데이트가 계속해서 우리를 다른 곳으로 끌고 간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지속적인 방해는 우리의 집중 능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킨다. 뇌는 깊은 사유를 위해서는 일정 시간 동안 방해받지 않는 환경이 필요한데, 우리는 스스로 그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지적했듯, 우리는 과잉 긍정성과 과잉 성과의 시대를 살고 있다. 멈춤도, 휴식도, 사색도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깊은 집중은 사치가 되어버렸다.
역설적이게도,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이 몰두의 전제 조건이다. 우리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즉각적인 자극을 찾는다. 그러나 창조적 사유와 깊은 통찰은 종종 지루함의 공백 속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지루함을 무의미한 공허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가 생성될 수 있는 여백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산책을 하거나, 아무 목적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 즉 아무런 목적 없이 자유롭게 노니는 경지가 바로 이런 것이다. 쓸모를 따지지 않고, 결과를 계산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시간 말이다.
네 번째 요소인 경외감은 이 모든 것의 정점이다. 경외감은 자신보다 훨씬 큰 무언가 앞에서 느끼는 압도적 감정이다. 우리는 거대한 산이나 광활한 바다 앞에서 자신의 미약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의식의 신비로움도 깨닫는다. 이 양가적 감정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면서도 고양시킨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프라이밍 효과를 활용해 경외감을 경험할 준비를 할 수 있다. 프라이밍이란 먼저 접한 자극이 이후의 지각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오늘은 놀라운 것을 발견할 거야"라고 아침에 스스로에게 말하거나, 경이로운 순간들을 기록하겠다는 의도를 세우면, 우리의 뇌는 그에 맞춰 세계를 다르게 지각하기 시작한다. 늘 스쳐 지나가던 구름의 형태, 아이의 웃음소리, 거리의 음악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는 세계가 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각 방식이 바뀐 것이다. 지각은 수동적 수용이 아니라 능동적 구성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