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돈의 행복 창출 능력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습니다. 경제학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행복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배고플 때 먹는 김밥 첫 조각은 엄청난 만족감을 주지만, 배가 부른 상태에서 먹는 열 번째 조각은 감흥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기본적인 생계 문제가 해결되는 일정 소득 수준(통상 GDP 1만 달러)을 넘어서면 돈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은 급격히 감소합니다. 수억 원의 연봉을 더 버는 사람이 얻는 추가적인 행복감은, 우리가 평일에 비해 주말에 느끼는 행복감의 차이보다도 작을 수 있습니다. 엄청난 노력의 대가로 얻는 행복의 증가는 극히 미미한 것입니다. 돈이 행복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미 배가 부른데도 꾸역꾸역 김밥을 계속 밀어 넣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둘째, 돈과 행복의 인과관계가 거꾸로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행복한 사람이 돈을 더 잘 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를 '행복 보너스(Happiness Bonus)'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한 유명한 연구에서는 명문 사립대에 입학한 신입생들의 '밝음(긍정적 정서)' 정도를 측정한 뒤 20년 후 그들의 연봉을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학벌이나 지능이 비슷한 조건임에도 20년 전 더 밝고 긍정적이었던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연봉이 현저히 높았습니다. 이는 행복이 단지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성공을 이끄는 강력한 동력임을 시사하는 역전된 인과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왜 돈에 대한 생각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까요? 그 이면에는 과도한 안정 지향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걱정 없는 안정적인 상태를 행복과 동일시하며, 그 안정을 보장해 줄 대표적인 수단으로 돈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이는 탐욕이 아닌 안정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행복과는 다른 길입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사람'에게 의존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식량을 구하는 모든 과정에서 집단과의 협력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뇌는 생존 확률을 높여주는 '사회적 교류'에 대해 '쾌감'이라는 강력한 보상을 주도록 진화했습니다. 즉, 사람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쾌감의 스위치입니다. 하지만 돈은 과거에 사람이 해주던 많은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며, 행복의 가장 결정적인 원천인 사람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라 자기 파괴적인 함정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아무런 쾌감을 주지 못하는 상징(돈)을 좇음으로써, 우리는 진화가 진정한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한 바로 그 신경 회로, 즉 사람과의 연결을 스스로 마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축적된 방대한 심리학 연구들이 지루할 정도로 일관되게 내놓는 결론이 있습니다. 개인의 행복감을 가장 강력하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변수는 학벌, 직업, 재산이 아니라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가'입니다. 한마디로 '돈 부자'가 아닌 '사람 부자'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인간의 뇌가 사회적 동물로 진화해온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생존에 유리한 행동, 즉 타인과의 교류에 대해 즐거움과 쾌감이라는 보상을 주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의 본성에 각인된 생존 전략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외향성과 내향성에 대한 오해에 빠집니다. 외향적인 사람만 사교적이어서 행복할까요? 외향적인 사람이 더 행복한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들의 성격 자체가 우월해서가 아니라,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는 그들의 성향이 행복의 핵심 자원인 '사회적 교류의 기회'를 자연스럽게 늘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행복할까요? 이는 가장 큰 오해입니다. 연구 결과는 정반대의 사실을 보여줍니다. 내향적인 사람도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훨씬 더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놀라운 점은, 혼자일 때와 비교했을 때 행복감이 증폭되는 크기가 외향적인 사람보다 오히려 내향적인 사람에게서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사회적 만남을 주저하는 이유는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극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 쉽게 피로감을 느끼거나, 일어나지도 않을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도 사람을 통해 행복을 얻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작은 불편함과 근거 없는 걱정이 만남의 문턱을 높이는 것입니다.
결론은 명확합니다. 내향성이든 외향성이든, 인간 행복의 절대적인 원천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사람과의 관계가 이토록 중요한데, 왜 한국 사회의 관계 맺기는 이토록 팍팍하고 힘든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