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의식적인 경청의 실천이 필요하다. 교사와 학부모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이 아이의 말을 그 아이 자체로 듣고 있는가, 아니면 이 아이의 성적, 배경, 평판을 통해 듣고 있는가?" 한 초등학교에서는 '블라인드 질문함'을 운영한다. 아이들이 익명으로 질문을 제출하면, 교사는 누가 한 질문인지 모르는 상태로 답변한다. 놀랍게도 평소 "산만하다"고 여겨지던 아이의 질문이 가장 통찰력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는 우리의 편견이 얼마나 깊이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둘째, 언어 창조의 공동 작업이 필수적이다. 교육 공동체는 아이들의 이름 없는 경험에 함께 이름을 붙여주어야 한다. 한 중학교에서는 매달 '새로운 개념 만들기' 시간을 운영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경험 중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나누고, 함께 토론하며, 적절한 이름을 찾아간다. '시험 전날의 초조함과 다음 날의 공허함을 동시에 느끼는 감정'을 한 아이가 '시험 멜랑콜리'라고 명명했을 때, 많은 친구들이 "나도 그래!"라며 공감했다고 한다. 경험에 이름이 생기자 비로소 그것을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언어 유희가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새로운 개념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교육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셋째, 구조적 성찰의 시스템화가 요구된다. 교육기관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실천을 점검해야 한다. 학생회 의견이 실제로 학교 운영에 반영되는가? 발표 기회가 특정 학생들에게 집중되지는 않는가? 학부모 참여가 특정 계층에 편중되지는 않는가? 한 혁신학교는 매 학기 말 '목소리 분석'을 실시한다. 교사 회의 발언, 학생회 참여, 학부모 상담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누구의 목소리가 과대/과소 대표되는지 파악하고, 다음 학기 개선 방안을 수립한다. 이러한 체계적 접근 없이는 선의만으로 구조적 편견을 극복할 수 없다.
넷째, 신뢰의 선제적 부여가 중요하다. 프리커는 '증언적 정의(testimonial justice)'의 핵심은 '신뢰의 민주화'라고 말한다. 평소 말을 잘 하지 않는 아이, 성적이 낮은 아이, 소수자 배경의 아이에게 먼저 발언권을 주고, 그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이다. 한 교사는 "나는 일부러 조용한 아이들을 먼저 지명한다. 그리고 그 아이가 말하는 동안 절대 끼어들지 않고, 끝까지 듣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아이의 목소리가 커지고, 다른 아이들도 경청하게 된다"고 말한다.
다섯째, 실패할 권리의 보장이다. 해석적 부정의를 극복하려면, 아이들이 서툰 언어로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완벽하게 정리된 생각만 발언할 수 있다면, 많은 아이들은 영원히 침묵할 것이다. "잘 모르겠는데...",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정확하게 표현할 순 없지만..."으로 시작하는 말들을 환영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사유는 완결된 결과가 아니라 진행 중인 과정이다. 교실은 그 과정이 안전하게 펼쳐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인식론적 정의는 추상적 철학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아침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우리 아이가 "내 말도 들려질까?", "내 생각도 가치 있을까?"라고 자문할 때, 그 물음에 대한 우리 교육 공동체의 답이다. 모든 아이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언어를 갖고, 그 표현이 존중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배움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러한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 교육자와 학부모의 책임이다.
프리커는 이렇게 말한다. "인식론적 부정의는 인식론적 덕(epistemic virtue)의 실천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그것은 타인을 인식적 주체로 존중하는 태도, 자신의 편견을 성찰하는 겸손함, 그리고 아직 명명되지 않은 경험에 귀 기울이는 민감성이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인식론적 덕을 함양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우리 교육의 목표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온전한 인식적 주체로 성장시키는 것이라면, 인식론적 정의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모든 아이가 자신의 앎을 펼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권리를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