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문제는 '확증편향'입니다. 고정관념에 맞지 않는 사실은 무시하고, 부합하는 작은 차이는 크게 주목합니다.
예를 들어: 성격이 활달한 아들 → "역시 남자애라서 그래" 성격이 활달한 딸 → "이 아이는 특별히 활동적이네"
성별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기준이 다른 것입니다. 이런 확증편향은 과학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남녀 차이가 있다는 연구가 더 주목받고, 차이가 없다는 연구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집니다.
최민준 대표의 "왕복 8차로 vs 갓길" 비유는 단순히 과학적으로 부정확한 것을 넘어서, 양육 현장에 실질적인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첫째, 자기충족적 예언이 됩니다. 부모가 "우리 아들은 태생적으로 멀티태스킹이 안 돼"라고 믿으면, 아이에게도 그런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넌 남자애니까 한 번에 한 가지만 해"라는 말은 아이의 가능성을 제한합니다. 아이는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하고, 실제로 멀티태스킹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됩니다.
둘째,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합니다. "남자는 원래 그래"라는 사고방식은 아이의 행동을 성별이라는 단일 요인으로 환원시킵니다. 개인의 성향, 환경, 교육, 흥미 등 훨씬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하게 만듭니다.
셋째,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을 부정합니다. 뇌는 '신경가소성'을 가진 놀라운 기관입니다. 경험과 학습을 통해 평생 변화하고 성장합니다. "갓길 수준"이라는 결정론적 표현은 이런 가소성을 무시하고, 아이의 뇌가 고정되어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신 신경과학이 말하는 양육의 원칙은 이렇습니다.
1. 성별이 아닌 개별성에 주목하세요 우리 아이가 남자아이의 평균에 부합하는지가 아니라, 이 아이만의 고유한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관찰하세요. 어떤 남아는 타고난 멀티태스커일 수 있고, 어떤 여아는 한 가지에 깊이 몰입하는 것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2. 뇌는 평생 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신경가소성은 평생 작동합니다. 초등학교 때 집중력이 부족했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놀라운 집중력을 보일 수 있습니다. "넌 원래 그래"라는 말 대신 "아직은 그래, 하지만 연습하면 달라질 거야"라고 말해주세요.
3. 고정관념을 경계하세요 "남자애라서 그래", "여자애는 원래 그래"라는 말을 입에 달지 마세요. 이런 표현은 아이에게 자신의 성별이 행동의 한계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4.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세요 멀티태스킹도, 깊은 집중도 모두 연습을 통해 향상될 수 있습니다. 성별과 관계없이 다양한 인지적 도전을 제공하세요.
최민준 대표의 책 제목은 "아들의 뇌는 잘못이 없다"입니다. 이 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다릅니다. 아들의 뇌에 잘못이 없는 이유는 '갓길 수준이어서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애초에 딸의 뇌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 신경과학은 명확히 말합니다. 남녀의 뇌는 크기, 구조, 기능 면에서 비슷합니다. 성별 차이보다 개인차가 훨씬 큽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행동의 차이는 뇌의 구조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화 과정, 기대, 교육 방식, 개인의 성향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됩니다.
40년 전 10여 명의 시신 해부 결과에 기반한 통념을 2025년에도 반복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우리 아들들은 '갓길 수준'의 뇌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고유한 개인으로 세상에 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아들의 뇌가 아니라, 아들의 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