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홀로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가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켜고, 게임을 하고, 쇼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심심해서가 아닙니다. 침묵 속에서 마주하게 될 '내면의 공허함'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이를 '놀이(Divertissement)'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죽음과 비참함을 잊기 위해, 나 자신을 잊기 위해 바쁨이라는 마약을 투여하는 셈입니다.
여기서 하이데거(Heidegger)라는 철학자가 등장해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그는 우리가 일상에 파묻혀 사는 상태를 '존재 망각'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진짜 나를 찾으려면 '깊은 권태(Deep Boredom)'라는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루함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지루함이 극에 달해 "아,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이 터져 나오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껍데기가 아닌 본질적인 삶과 마주하게 됩니다.
키르케고르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철학 강의를 듣다가, 강사의 논리가 아닌 '강사의 콧잔등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에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땀방울이 모여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한 생생한 생명의 리듬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선의 권력 이동'입니다. 남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강의 내용)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것(땀방울)을 보는 주체성. 산만함은 단순한 집중력 결핍이 아니라, 획일화된 세상에 저항하는 가장 우아한 투쟁입니다.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이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라고 말하며 시스템을 거부했듯, 여러분의 '딴짓'은 기계가 되기를 거부하는 인간성의 증명입니다.